Wednesday, July 17, 2013

서평Scrap : Closer (by Michael Connelly) - 네이버 '화이트데블(bhante)'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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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
마이클 코넬리 | 한정아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3.07.05

현재 미국에서 최고의 핫이슈는 2005년 플로리다주에서 최초로 도입된 정당방위법 'Stand Your Ground'이다. 이 법은 상대로부터 신체적 위해를 당하지 않고 심리적 위협만을 느끼는 경우에도 총기 등 살상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게다가 살상무기의 사용 범위를 자택으로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무제한으로 넓힌 것은 유색인종, 특히 흑인을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실제로 이 법은 강력범죄 예방이란 취지에서 마련됐지만 우려했던 대로 무고한 흑인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폐지론이 제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2년 2월 플로리다주 샌퍼드에서 지역 자율방범대원인 히스패닉계 백인 조지 짐머만이 17세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짐머만은 편의점에 들러 사탕과 음료수를 사들고 귀가하던 마틴을 마약 관련 범죄자로 오인하여 뒤를 쫓다가 시비가 붙어 몸싸움을 벌이던 중 생명의 위협을 느껴 총을 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범죄전력이 없고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마틴을 추격할 필요 없다는 911의 권고까지 무시한 채 쫓아가 기어코 사살한 짐머만의 행동을 과연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 개인의 인종차별적 동기를 가진 과잉행위는 아니었을까.

사건 발생 40여 일이 지난 후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진상조사를 촉구하자 그제서야 검찰은 짐머만을 2급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그리고 1년 5개월만인 지난 13일 플로리다주 법정에서 열린 짐머만에 대한 재판에서 6명의 배심원단은 정당방위를 인정함으로써 무죄 평결을 내렸다. 더구나 배심원 6명 모두가 히스패닉 1명을 포함한 백인 여성인 까닭에 흑인 사회는 명백한 인종차별적 판결이었다고 주장하며 1991년에 있었던 로드니 킹 사건을 상기시켰다. 현재 미국 시민들은 과거에 로드니 킹 사건에서 촉발된 LA 흑인 폭동을 떠올리며 심상찮은 분위기에 잔뜩 긴장한 채로 염려하고 있다.



크라임 스릴러 마스터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Vol.11 <클로저>가 번역 출간되었다. LAPD 해리 보슈를 주인공으로 최고의 경찰 소설을 선보여 온 작가 코넬리는 50대 중반에 들어선 해리 보슈의 원숙한 중년미를 바탕으로제2의 LAPD 인생의 서막 새롭게 연다. 경찰이라는 거대한 관료조직의 부패를 뒤로 한 채 거리로 뛰쳐나가 사립탐정으로 보낸 고독한 3년 여의 삶을 청산하고 복귀한 LAPD 미해결 사건 전담반, 일명 클로저... 사립탐정으로 동분서주하며 잃어버린 빛을 찾아 헤매는 동안 해리에게 구원의 빛을 안겨준 딸아이 덕분에 감격에 겨워하던 중년남성의 낯익은 듯 새로운 선택이 그다지 녹록치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상남자 해리 보슈의 근절할 수 없는 악을 향한 거침없는 도전과 정의 실현이라는 고귀한 소명 의식을 통해 지켜내고자 하는 구원의 빛을 신작 <클로저>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미해결 사건을 재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국사회와 관료조직의 어두운 이면, 즉 인종적 차이가 서로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 생물학적 연민이 아니라 증오를 바탕으로 한 차별을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에 근거한다는 점을 간파한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은 마이클 코넬리가 왜 현대판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찬사를 받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새로 부임한 LA 경찰국장은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어떠한 사건도 미결로 남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미해결 사건 전담반을 신설한다. 경찰국 6층 행정실에서 근무하던 키즈민 라이더의 적극적인 추천과 권유로 사립탐정 생활을 청산하고 복직한 해리 보슈는 키즈민과 함께 17년 전에 발생한 레베카 벌로런 살해 사건을 맡는다. 1988년 당시 16세에 불과했던 흑백 혼혈 소녀 레베카는 자신의 집 뒷산에서 총격을 당한 채 사체로 발견된다. 처음에 단순 실종사건으로 취급했던 경찰은 사체가 발견되자 자살로 처리하려다가 사체 부검 후 살해되었음을 인지하고 살인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특정한 단서나 살해 용의자를 찾지 못해 결국 사건을 콜드 케이스(cold case), 즉 미해결 사건으로 방치한다.

17년이 지난 후 과학수사기법의 발전으로 인해 살해도구로 쓰인 권총에 남은 혈흔에서 DNA를 추출하여 분석함으로써 강력한 용의자 한 명이 떠오른다. 드디어 잊힌 목소리의 주인공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해리와 키즈민의 첫번째 미해결 사건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용의자 혼자 감당하기에 버거운 살해사건이었음을 간파한 해리와 키즈민은 용의자의 배후 또는 공범을 찾아내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지만 결코 쉽지 않다.

"잊힌 목소리들의 합창." (p.15)
"미해결 사건 전담반에서 다루는 사건들을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야. 미해결 사건 전담반은 공포의 집이지. 우리의 가장 큰 치부. 그 사건들, 그 목소리들 말이야. 그 사건들은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 같아.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 속으로 파문이 퍼져 나가지." (p.15-16)

피해자의 유가족을 만난 해리는 딸의 죽음 이후 완전히 해체되고 피폐해진 가정을 목도하며 울분을 삼킨다. 레베카의 어머니는 딸의 침실을 17년 전 상태 그대로 유지한 채 심리적으로 딸의 죽음을 거부하고 있고, 아버지는 가출하여 노숙인의 삶을 살아가며 딸을 지키지 못한 책임과 사건 수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징벌하고 있다. 해리는 자신의 구원의 빛이 되어 준, 즉 살아가는 이유가 된 딸아이를 떠올리면서 레베카의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애통함을 금치 못한다. 지키고 보호해야 할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무거운 부정(父情)과 천사의 도시에서 스러져간 소녀를 오랜 시간 잊고 지냈다는 죄책감은 해리에게 미해결 사건을 끝내야 할 충분한 이유와 당위성을 부여한다. 

해리 보슈는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소녀 레베카의 인종적 테러를 의심한다. 그러던 중 자신과 앙숙지간인 부국장 어빈 어빙이 관련된 하이 징고, 즉 고위 간부가 간섭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감지한다. 특히 인종 차별을 바탕으로 한 증오 범죄일 가능성과 경찰조직이 인종 갈등으로 촉발될 흑인 사회의 폭동을 우려한 까닭에 벌인 사건 조작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다시 한 번 해리는 3년 전 LAPD 배지와 총을 내던지고 뛰쳐나간 원인을 제공한 경찰 관료조직의 부정 부패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회피하지 않고 맞서 싸워 정면돌파할 각오를 다진다. 지난 3년 동안 해리는 총 없이, 배지 없이 사는 삶이 균형을 잃고 절뚝거리는 절름발이의 온전치 않은 자유였음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더이상 다리를 절지 않고 천사의 도시에서 죽은 자들을 대변하는 클로저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내가 얘기 했나 모르겠는데, 그만두고 나서 처음에는 정말 좋더라고. 조직에서 나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그러다가 여기가 그리워지기 시작했고, 곧 다시 사건 수사를 시작했어. 나 혼자서. 어쨌든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됐어. 내가 다리를 약간 절기 시작했다는걸." (p.85-86)
"그 오랜 세월 동안 항상 총을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총이 사라지고 나니까 균형이 깨진 거지. 그래서 절름발이가 된 거야." (p.86)
"요점은, 총이 필요하다는 거야. 배지도 필요하고. 그것들이 없으면, 난 절름발이거든. 그것들이 필요해." (p.86)

9회초 원아웃 주자 1, 2루에서 뉴욕 양키스타디움에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이 울려 퍼진다. 불펜에서 몸을 풀던 양키스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가 마운드에 우뚝 선다. 곧 영구결번될 것이 확실한 백넘버 42번을 단 호리호리한 체구를 가진 노장의 눈빛이 날카롭다. 그리고 눈빛보다 더 날카로운 컷패스트볼, 일명 커터를 던져 병살로 타자와 주자 모두를 가볍게 솎아냄으로써 게임을 마무리한다. 검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의 신께 감사의 메시지를 전한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게 될 전설의 마무리 투수는 그렇게 또 한 건을 클리어하고는 양키스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동료들과 하이파이브한다.

3년 동안 LAPD를 떠나 있던 해리 보슈가 돌아와 맡게 된 보직이 바로 클로저, 마무리 투수이다. 미해결 상태로 방치되어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잊힌 목소리들의 합창에 답가를 보내야 하는 고귀한 미션을 수행하는 LA의 수호신... 어찌 보면 해리 보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가장 해리 보슈다운 직책이 아닌가 여겨진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진심어린 연민으로 보듬고 그들의 고통 가득한 신음과 울분에 공감할 수 있는, 그리고 강철 같은 신념을 가진 해리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자리가 있을까. 해리 보슈는 미해결 사건을 단지 끝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건 해결을 통해천사의 도시에 만연한 악과의 끊임없는 대결에 대한 진정한 해답과 구원을 추구할 것이다. 비록 수적으로 열세이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강력한 악당들과 대면할지라도 해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죽은 이들을 대변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가슴 깊이 새긴 채로 말이다.

"미해결 사건 전담반은 고귀한 곳이에요. 우리는 9회 말에 불려나오는 투수 같은 존재죠. 마무리 투수. 우리가 끝낼 수 없으면, 아무도 끝낼 수 없는 거예요. 수적으로는 턱없이 열세죠. 1960년 이후의 미해결 사건이 8천 건이나 되니까. 하지만 전담반 전체가 한 달에 겨우 한 건을 해결한다고 해도, 그래서 1년에 해결한 사건이 고작 열두 건밖에 안 된다고 해도,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마무리 투숩니다. 살인 사건 담당이라면 꼭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여기죠." (P.26-27)

아래로 내려가면서 보슈는 마음속에서 다짐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소명을 실행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로버트와 뮤리얼과 레베카 벌로런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죽은 이들을 대변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했다. (p.50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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